
한 나라의 문학은 그 나라의 지역문학들이 모여서 형성된다. 신라시대 향가나 조선시대의 시조와 가사가 활발하게 창작되었던 지역이 대구·경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대구는 한국문학사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위상을 차지했다. 특히 대구 문인들은 일제강점기에 항일민족정신을 바탕으로 근대문학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여명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국 근대문학은 계몽기의 새로운 가치와 이념을 바탕으로 시작됐다. 출판사, 학교, 동인지, 잡지 등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한 대구의 근대문학은 시인 이상화, 백기만, 이장희, 소설가 현진건을 만남으로써 그 폭과 깊이를 더하였다. 1917년 프린트판 동인지 『거화』를 냈던 현진건, 이상화, 이상백, 백기만 등은 이후 이장희와 함께 한국근대문학 형성의 중요 토대가 되었던 『백조』와 『금성』의 주요 동인으로 활약했다. 대구에서 김승묵이 1925년부터 1927년 사이에 발간한 문예지 『여명』(통권 4호)은 1920년대 중반 한국 근대문학을 일군 중요 매체이다. 이후 많은 작가들이 등장하여 일제강점기 한국 근대문학의 여러 분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소설가 백신애, 장덕조, 김동리, 시인 이육사, 이병각, 오일도, 박목월, 조지훈, 시조시인 이호우, 문학평론가 이원조, 김문집, 아동문학가 윤복진, 김성도, 이응창 등이 이룩한 문학적 성취는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일제에 항거한 이상화, 현진건, 이육사 등은 지조 높은 문인들이었다. 이들은 일제의 지속적인 검열과 억압에도 위축되지 않고 시대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작품들을 발표, 항일 저항문학의 한 축을 형성했다. 현진건은 『고향』, 『운수좋은 날』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민중들의 절망적인 삶의 현실을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로 표상화했으며,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통해 나라 잃은 백성의 비애와 저항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이육사는 몇 차례의 피검과 투옥을 거듭하면서도 『절정』, 『교목』,『광야』 같은 뛰어난 저항시를 남겼다.

해방을 맞으면서 대구의 문단은 광복의 기쁨과 새로운 문학을 향한 열망을 드러냈다. 좌우의 이념 갈등 속에서도 대구는 죽순시인구락부와 조선아동회를 중심으로 많은 시인들과 아동문학가들이 등장해 문학의 열기를 뿜어냈다. 『건국공론』, 『무궁화』, 『민고』 등의 잡지가 등장해 당시 대구의 사회와 문화를 조명하기도 했다. 죽순시인구락부가 발간한 『죽순』, 조선아동회의 『아동』, 최해태가 중심이 된 『새싹』 등은 해방기 대구문학의 중요 거점으로 지역 문학의 터전을 튼튼하게 다졌다. 『죽순』은 1946년에 창간, 1949년 11집까지 발간된 대구지역의 시동인지로, 시인 이윤수가 주재했다. 대구의 동인지였지만 범시단 성격을 띠면서 박목월, 유치환, 이호우, 조지훈, 박두진, 이영도, 이응창, 김춘수, 신동집 등 명망 있는 시인들의 작품을 실었다. 또한 추천제를 두어 김요섭, 최계락, 천상병 등의 신인을 배출했다. 죽순시인구락부는 좌우 대립 속에서 순수문학을 지켰으며, 달성공원에 시문학사상 최초로 세워진 시비인 ‘상화시비’ 건립에도 이바지했다. 조선아동회는 해방 직후 지방에서 최초로 창립(1945. 12. 30)된 아동문화단체로, ‘아동문화에 관한 모든 것을 이론보다 실천에서 이끌어 가자’는 취지로 발족됐다. 조선아동회의 기관지였던 『아동』(1946년 4월 창간)은 좌우 갈등에 휩쓸리지 않고, 대구지역 아동문학을 활성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주간과 편집은 박목월이 맡았으며, 조선아동회 출판국은 박목월의 『박영종동시집』, 황윤섭의 『규포시집』 등을 발간하기도 했다. 『새싹』은 최해태가 아동교육을 위해 1946년 1월 대구에서 발간한 아동잡지로 『아동』과 함께 대구지역 아동문학을 주도했다. 초기에는 아동교육이 중심이 된 계몽적 성격을 띤 잡지였으나 김진태, 김홍섭 등이 편집을 맡으면서 아동문학 중심의 잡지로 변모했다. 박영종, 황윤섭, 이응창, 김성도, 여영택, 김요섭, 윤백 등이 주요 필진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한국전쟁기의 대구문단은 다른 어느 시기보다 문학적 성과가 풍성했다. 피난문단과 지역문단이 뒤섞이면서 이 무렵 대구는 사실상 한국문단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시기의 문학작품은 전쟁의 절박한 상황에서 작가들이 빚어낸 신념의 불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작가들을 대구와 부산으로 몰려들게 했으며, 대구는 육군과 공군의 지휘부가 위치하였기 때문에 전쟁문학 담론을 생산하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문총구국대, 육군종군작가단, 공군종군문인단이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전쟁문학의 중요 매체였던 문총구국대의 『전선시첩』, 육군종군작가단의 『전선문학』, 공군종군문인단의 『창공』, 『공군순보』 등이 대구에서 발간됐다. 휴전으로 외지에서 온 많은 문인들이 떠나면서 대구문단은 차츰 전쟁문학의 열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중·후반부터는 대구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다각적인 모색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 대구에서 『시와 비평』, 『예술집단』, 『문학계』, 『석탑문학』 등의 잡지와 동인지들이 잇달아 등장했으며, 지역 문인들의 작품집 발간이나 전국 단위의 작품 활동 등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피난문단은 아동이나 학생 계층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학교마다 문예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했다. 대구에서 발간된 『소년세계』(1952. 7)는 『새싹』, 『아동』 등으로 마련된 대구 아동문학의 활동무대를 더욱 확장시켰다. 전후에는 신동집, 이효상, 유치환, 이설주, 구상, 박훈산, 김춘수, 김요섭, 전상렬, 윤혜승, 홍성문, 여영택, 김윤식 등 대구지역 문인들의 시집 발간이 활기를 띠었다. 이영도, 이호우, 조애영 등의 시조집이 출간되었고, 백기만은 『씨뿌린 사람들』(1959)을 펴내 대구․경북지역 작고 예술가들의 문학과 삶을 조명했다. 한편 1957년 3월 3일 창립된 대구아동문학회(회장 이응창)는 향토 아동문학의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전쟁의 충격과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면서 시작된 1960년대는 민족의 주체적 역량이 차츰 강화되어 나가던 도약의 시기였다. 순수․참여 논쟁 속에서도 대구문단은 순수문학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김춘수와 신동집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시기에 크고 작은 문학단체들이 등장하고 작가들의 본격적인 창작활동 역시 두드러졌다. 또한 매일신문 등 지역의 일간지들도 신춘문예 제도를 두어 문단 형성과 문학의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1960년대 대구의 시단은 김춘수, 신동집을 비롯한 중진 및 신인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시인들의 다양한 실험과 모색은 대구를 ‘시의 도시’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영남시조문학회의 결성과 시조동인지 『낙강』의 창간도 주목됐다. 영남시조문학회는 1967년 4월 26일 이호우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그 해 12월 10일 『낙강』 제1집을 발간했다. 서석달, 최고, 김준성, 윤장근 등이 창작집을 내거나 소설을 발표하였는데, 이들은 전쟁의 휴유증과 존재에 대한 불안을 절망과 좌절, 죽음의식 등으로 그려냈다. 평론 분야에는 김춘수, 최광렬, 전대웅, 원형갑 등이 활약했으며, 1960년대에 등단한 최창록, 권기호, 송영목 등도 가세했다. 대구의 수필가들은 1968년 12월 경북수필동인회(회장 최정석)를 창립했다. 발기인은 장인문, 김시헌, 이화진 등이었다. 김홍곤은 195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우물』이 당선된 데 이어 1960년대 ‘4.19혁명 100일 기념 대구 시내 12개 단과대학 합동예술제’에 장막희곡 모집에 『모기』가 당선되는 성과를 내었다. 이만택은 1964년 극단 신협과 한국일보의 공동 장막희곡 모집에 『무지개』가 당선돼 희곡작가로 활동했다. 극작집 『바람난 빌딩』(1969)을 펴낸 김찬호는 주로 시나리오를 썼다. 강소천, 김동리, 박목월, 조지훈, 최태호를 편집위원으로 1962년 10월 창간된 『아동문학』은 19집(1969. 5)으로 종간될 때까지 60년대 아동문학의 중심역할을 했다. 대구아동문학회도 풍성한 성과를 거두며 저변을 확대했는데, 이응창, 김성도, 김진태, 윤사섭, 유여촌, 이오덕, 신현득 등이 주역들이었다. 이재철은 1967년 『아동문학개론』을 발간했으며, 권정생은 1969년 기독교아동문학상 현상 모집에 동화 『강아지똥』이 당선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